대구광역시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기

시골(是滑) 2015. 3. 10. 06:50

천하가 혼란되어 지방관 파견이 임의롭지 못하게 되었던 後三國期에 신라에서 임명한 관리가 壽昌郡이란 한 지역을 10년씩이나 통치한 지방관의 사례도 찾아볼 수가 있다. 최치원의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전한다.

 

A. 天祐五年戊辰冬十月護國義營都將重閼粲異才建八角燈樓于南嶺所以資國慶而奧有重閼粲者偉大夫也乘機舊志嘗逞儁於風雲易操修身冀償恩於水土豹變而倂除三害逐乃銓澤崇丘築城義保於是乎靜守西畿對從南畝按撫安土閼粲眞是在家大士蔚爲奉國忠臣以般若爲干戈以菩提爲胃能安一境僅涉十秋(東文選64, ,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위 사료 A天祐五年戊辰은 곧 孝恭王11907년으로 후삼국이 전개된 지 근 7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때 궁예의 세력은 竹嶺을 넘어 영주까지 진출하였고 후백제 역시 낙동강 이동지역으로 침투해 들어 갈 때였다. 이때 異才가 갖고 있던 관계가 重閼粲이었는데, 新羅外官中重閼粲이 맡을 수 있는 직책은 郡太守였기 때문에 異才壽昌郡太守를 지낸 인물로 볼 수가 있다.20) 따라서 중알찬 異才壽昌郡태수가 되어 병화를 물리치고 築城義保하여 수도권의 서쪽지방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안돈하여 농사를 일으킨 지 10여 년이나 되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異才가 이렇듯 10여 년이나 壽昌郡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비범한 능력과 혼란의 시대를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바른 시국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정부로부터 공훈의 대가로 護國義營都將이란 장군명을 받은 것은 異才가 태수로 출발하여 장군이 되어 壽昌郡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하였던 과정과 함께 신라하대 將軍職이 출현하는 경위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崔圭成, 豪族聯合政權說硏究史的 檢討, 國史館論叢 第78.

 

또 다른 하대의 미륵신앙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K 太和4(830, 흥덕왕 5) 마애 미륵불 造像(太和四年銘磨崖石佛造像記)(韓國金石全文古代, p. 165, “太和四年庚戌三月二日成彌勒佛.”)

龍年羊月庚申日밤에 꿈을 꾸었는데 보니 성 남쪽에 있는 佛山위에 7구의 미륵상이 몸을 포개고 어깨를 밟으며 북으로 향하고 서 있는데 그 높이가 하늘까지 닿았다. 뒤에 며칠 밤을 지난 뒤 다시 꿈을 꾸었는데, 성의 동편 獐山羅漢僧이 털 옷을 입고 검은 구름 위에 앉았는데, 무릎을 안고 얼굴로 可其山의 어구를 보고 伊處道가 이곳을 경유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올 때라고 말하였다. 꿈을 깨고 나서 생각하기를 하늘이 내리는 화가 아직 끝나지 않고 땅은

오히려 간악한 무리를 허용하는구나. 시국이 위태하면 생명이 모두 위태하며 세상이 어지러우면 인심도 어지러운 법이다. 내가 우연히 먼저 깨닫게 되었으니, 이에 대책을 신중히 세워야 할 것이다. 나의 혼은 이상스러운 징조에 접하였고, 눈으로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였다.결단코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佛事를 일으키는 것이다고 하였다(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孤雲先生文集1 (崔文昌侯全集所收), pp. 8586, “乃以龍年羊月庚申夜夢又見城南佛山上有七彌勒像累體蹈肩面北而立其高挂空後踰數夕復夢於城東獐山見羅漢僧披毳衣以玄雲爲座抱膝面稱可其山口云伊處道(殉命興法之列士也) 由此地領軍來時矣洎覺乃念言曰天未悔禍地猶容奸時危而生命皆危世亂而物情亦亂而我偶諧先覺勉愼後圖今得魂交異徵目擊奇相決報君恩盖隆佛事.”)

 

은 흥덕왕 5忠北鎭川郡草平面龍亭里에 마애불을 조성하였음을 말하고 있고,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는 효공왕 12(天祐5, 909) 重閼粲異才燈樓를 세워 적병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 인연을 말하고 있다. 즉 꿈에 7기의 미륵상이 몸을 포개고 어깨를 밟으며 북을 향하고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며칠 후 다시 나한승이 적의 침입을 예고해 주었으므로 이 이상한 징조를 접하여 팔각등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를 본다면 신라 하대에 미륵불은 싸움을 예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바꾸어 생각하면 나라의 위태로움을 경고해주는 호국불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만, 下代戰亂과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하대 미륵신앙이 지니는 특징의 한 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金英美, 新羅阿彌陀信仰新羅人現實認識, 國史館論叢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기는 [동문선 제64권 기(記)]와 [고운집 제1권]에 실려 있고, [고전번역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원문과 1968년 임창순과 2009년 이상현의 번역문을 볼 수 있다. 이상현의 번역문은 각주처리가 잘 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이문기, 김창호 선생님의 관련 글이 있다고 하는데 살펴볼 일이다.

 

이문기. <신라말 대구지역 호족의 실체와 그 행방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기"의 분석을 통하여->. <<향토문화>> 9, 10합. 향토문화연구회, 1996.

김창호.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누기의 분석>. <<고문화>>. 57. 부산: 한국대학박물관협회, 2001.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동문선 제64권 기(記) [고전번역원]에서

최치원(崔致遠)

천우(天祐) 5년 무진(戊辰)년 겨울 10월 호구의영도장 중알찬(護國義營都將重閼粲)인 이재(異才)가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며 전쟁의 화를 물리치기 위함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이 착한 소원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이를 따른다.” 하였으니, 곧 만일 원하는 것이 착한 일이라면 본시 어긋나는 법이 없을 것이다. 지금과 옛 일을 서로 대조해 보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나타난다. 모든 땅이름을 붙인 것은 대개 하늘 뜻과 부합되는 듯하다.

이 성에는 서쪽에 둑이 있는데, 이것을 불좌(佛佐)라 하며, 동남쪽으로는 불체(佛體)라는 못이 있고, 그 동쪽에 또 따로 천왕(天王)이라는 못이 있으며, 유(維)에 옛 성이 있는데 이것을 달불(達佛)이라 하고, 성의 남쪽에 산이 있는데 또한 불(佛)이라 한다. 명칭이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요, 이치상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환경이 이렇게 좋은 곳은 좋은 시기와 서로 맞게 된다.

중알찬(重閼粲)은 훌륭한 대부(大夫)다. 기회를 이용하여 뜻을 발휘하여 일찍이 풍운(風雲) 속에서 그의 뛰어난 역량을 시험하였고, 이제는 생각을 달리하여 몸을 수양하며 땅위에서 은혜 갚을 생각을 가졌다. 범처럼 나타나서 국가를 해치는 자들을 숙청하던 몸으로 뱀처럼 도사리고 들어앉아서 더욱 인격을 수양했다. 이미 나쁜 무리들을 제거하고 나서 곧 반드시 시골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니, 살고 있는 곳에서 모든 사람이 감화할 터인즉 어디로 간들 좋지 아니하리오.

드디어 곧 높은 언덕을 택하여 그곳에 성을 쌓았다. 강물 위에 우뚝 선 성은 끊어진 절벽과 같으며 험한 산을 등지고 우뚝한 것은 긴 구름과 같다. 서쪽에 있는 도성(都城)을 안정시키며 한편 농사에 종사하였다. 지방의 주민을 편하게 돌보고 친구들을 맞아서 접대하니, 찾아오는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으나 그들을 받아들이는 아량은 바다같이 넓었다. 가령 복잡한 부탁이 있을지라도 모두 힘을 다하여 주고 말이 없었다.

더구나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육바라밀행을 닦았다. 돈오(頓悟)하면 아침에 범인이던 것이 저녁에 성인이 되며, 점수(漸修)하면 조금씩 전진하며 크게 발전한다. 모두 자신에 대하여는 원수처럼 책망하며 중을 공경함에는 부처님처럼 받들었다. 언제나 불법의 일을 마련하였고 다른 인연에는 구애되지 않았다. 실로 불[火]속에 연꽃이 핀 것이요, 서리 속에 계수[桂]가 솟아오른 것이다.

더구나 그의 부인은 평소부터 훌륭한 아내였다. 덕스러운 말과 행동 넉넉하고, 한 마디 말도 실수가 없었다. 염불 소리를 듣고 난 뒤로는 마음을 거기에 의탁하였다. 날마다 불경을 읽어 손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이리하여 화장품 대신 자비를 베풀었고 거울대신에 지혜를 열었다. 훌륭한 소문이 더욱 퍼져서 여러 사람의 칭찬이 널리 전했다. 옛말에, “이 아내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남편이 있으랴.” 함과 같다.

알찬은 집에 들어앉아 있는 대사(大士)이며, 위대한 나라를 받든 충신이다. 불법을 무기로 삼고 진리를 갑주(甲冑)로 삼았다. 능히 한 경내를 편케 한 지 이제 겨우 10년이 되었다. 기운이 높은 자는 지망(志望)이 치우치게 높고, 마음이 바른 자는 정신으로 사귐이 반드시 바르다.

그러므로 용년(龍年 사년(巳年)) 양월(羊越 미월(未月)) 경신(庚申)일 밤에 꿈을 꾸었는데, 달불성(達佛城) 북쪽 마정계사(摩頂溪寺)에 있는 도일대(度一大) 불상이 앉은 연화좌(蓮華坐)가 하늘까지 높이 올라붙고 좌편에 있는 보처보살(補處菩薩)도 그러하였다. 남쪽으로 가다가 시냇가에 이르러 한 여자를 보고 불상이 저렇게 되는 이유를 물으니, 그 우바이(優婆夷)가 대답하기를, “이곳은 거룩한 지역입니다.” 하였다. 또 살펴보니 성 남쪽에 있는 불산(佛山) 위에 7기의 미륵상(彌勒像)이 몸을 포개고 어깨를 밟으며 북으로 향하고 섰는데, 그 높이가 하늘까지 닿았다.

뒤에 며칠 밤을 지난 뒤에 다시 꿈을 꾸었는데, 성의 동편 장산(獐山)에 나한승(羅漢僧)이 털옷을 입고 검은 구름 위에 앉았는데, 무릎을 안고 얼굴로 가기산(可其山)의 어구를 보고 말하기를, “이처도(伊處道) 목숨을 희생하여 벌법에 순고한 열사 가 이곳을 경유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올 때라.” 하였다.

꿈을 깨고 나서 생각하기를, “하늘이 내리는 화가 아직 끝나지 않고 땅은 오히려 간악한 무리를 허용하는구나. 시국이 위태하면 생명이 모두 위태하며, 세상이 어지러우면 인심도 어지러운 법이다. 내가 우연히 먼저 깨닫게 되었으니, 이에 대책을 신중히 세워야 할 것이다.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많은데 어찌 미약한 힘을 쓰기를 부끄러워 하리요.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결심함은 불사를 높이는 것이다. 바라기는 어두운 곳이 생기지 아니하여 두루 미혹한 무리를 깨우치게 하려면 마땅히 법등(法燈)을 높이 달아서 빨리 병화(兵火)를 없애는 것이라.”고 하였다. 경치 좋은 곳을 택하여 높이 누각을 세우고 등불을 켜서 성 위에 세워 놓고 영원히 불등이 빛을 발하여 적병의 침략을 방어하게 하였다.

그 해 첫겨울에 등루(燈樓)를 세우고, 11월 4일 공산동사(公山桐寺)의 홍순대덕(弘順大德)을 맞이하여 좌주(座主)를 삼고, 재(齋)를 베풀어 경찬(慶讚)하였다. 태연대덕(泰然大德), 영달선대덕(靈達禪大德), 경적선대덕(景寂禪大德), 지념연선대덕(持念緣善大德), 흥륜사(興輪寺)의 융선주사(融善呪師) 등의 고승들이 다 모여들어 법회를 장엄하게 하였다.

묘하도다. 이 공덕이여. 8각등의 아홉 가지 광채가 밤중에 사방으로 비추어 깊숙한 곳이라도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감동한 바가 있으며 반드시 통하였다. 이것은 아나율(阿那律)이 등 심지를 돋우던 인연과 유마힐(維摩詰)이 등불을 전하던 이야기에, “두 가지 아름다움을 완연히 이루며, 널리 뚜렷한 표적을 나타내었다.” 함은, 알찬(閼粲)을 가리킨 말이라 할 것이며, “정광여래(錠光如來)와 도리천녀(忉利天女)는 과거의 공을 잊지 아니하여 후세에서 능히 초월하게 되었다.”는 말은 그 어진 부인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나는 멀리서 글을 지어 거대한 소원을 서술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아 드디어 사실을 바로 써서 앞으로의 일을 경계하며, 또한 도를 위하여 가정을 잊었으므로 공적이 마침내 영원이 서게 되었다. 성의 이름을 호국(護國)이라 하였으니, 그 명칭의 의미가 속일 수 없을 것이며, 덕이 이미 자랑할 만한 것이므로 문장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하리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창순 (역) ┃ 1968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天祐五年戊辰冬十月。護國義營都將重閼粲異才。建八角燈樓于南嶺。所以資國慶而攘兵釁也。俚語曰。人有善願。天必從之。則知願苟善焉。事無違者。觀夫今昔交質。有無相生。凡列地名。盖符天意。是堡兌位有塘號佛佐者。巽隅有池號佛體者。其東又有別池。號天王者。坤維有古城。稱爲達佛。城南有山。亦號爲佛。名非虛設。理必有因。勝處所與。良時斯應。粤有重閼粲者。偉大夫也。乘機奮志。甞逞儁於風雲。易操修身。兾償恩於水土。豹變而倂除三害。蛇盤而益愼九思。旣能除剗荊榛。爰必復歸桑梓。所居則化。何往不諧。遂乃銓擇崇丘。築成義堡。臨流而屹若斷岸。負險而矗如長雲。於是乎靜守西畿。對從南畝。按撫安土。祗迓賓朋。來者如雲。納之似海。使憧憧有託。能榾榾無辭。加以志切三歸。躬行六度。頓悟而朝凡暮聖。漸修而小往大來。皆由貶己若讎。敬僧如佛。常營法事。靡㝵他緣。實綻火中之蓮。獨標霜下之桂。况乎令室。素自宜家。四德有餘。一言無失。風聞玉偈。必託于心。日誦金經。不離於手。是乃用慈悲爲鉛粉。開智慧爲鏡輪。嘉聲孔彰。衆善普會。古所謂不有此婦。焉有此夫者。閼粲眞是在家大士。蔚爲奉國忠臣。以盤若爲干戈。以菩提爲甲冑。能安一境僅涉十秋。氣高者志望偏高。心正者神交必正。乃以龍年羊月庚申夜。夢於達佛城北摩頂溪寺都一大像。坐蓮花座。峻極于天。左面有補處菩薩。高亦如之。南行於溪滸。見一女子。因訊睟容所以然。優婆夷答曰。是處是聖地也。又見城南佛山上。有七彌勒像。累體蹈肩。面北而立。其高柱空。後踰數夕。復夢於城東獐山。見羅漢僧披毳衣。以玄雲爲座。抱膝面稱可其山口云。伊處道 殉命興法之列土也。 由此地領軍來時矣。洎覺乃念言曰。天未悔禍。地猶容姧。時危而生命皆危。世亂而物情亦亂。而我偶諧先覺。勉愼後圖。今得魂交異徵。目擊奇相。輒覬裨山益海。寧慙撮壤導涓。决報君恩。盖隆佛事。所願不生冥處。遍悟迷群。唯宜顯擧法燈。亟銷兵火。爰憑勝槩。高刱麗譙。爇以銀釭。鎭於鐵甕。永使燭龍開口。無令燧象焚軀。其年孟冬。建燈樓已。至十一月四日。邀請公山桐寺弘順大德爲座主。設齋慶讚。有若泰然大德,靈達禪大德,景寂禪大德,持念緣善大德。興輪寺融善呪師等。龍象畢集。莊嚴法筵。妙矣是功德也。八觚之九光。五夜之中。四炤無幽不燭。有感必通則乃阿那律正炷之緣。維摩詰傳燈之說。宛成雙美。廣示孤標者。閼粲之謂矣。錠光如來。忉利天女。前功不弃。後世能超者。賢耦之謂矣。愚也尋蒙遙徵拙文。俾述弘願。遂敢直書其事。用警將來。且道叶忘家。功斯永立。城題護國。名亦不誣。德旣可誇。詞無所媿者爾。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의 기문 고운집 제1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등루의 기문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175c0009.gif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pixel, 세로 10pixel  () 모두 3()이다. 그동안 전전(轉轉)하며 등사(謄寫)하다 보니, 글자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 삼가 지자(知者)를 기다린다.


천우(天祐) 5(908, 효공왕12) 무진년 겨울 10월에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그 목적은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고 병란(兵亂)의 흔단(釁端)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의 소원이 착하면 하늘이 반드시 들어준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 소원이 참으로 착한 이상에는 그 일이 어긋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살펴보건대 현재와 과거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와 무()는 상호 대칭적 관계에 있다. 지명이 나열된 것을 보면 거기에는 모두 하늘의 뜻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이 성보(城堡)의 서쪽에는 불좌(佛佐)라는 이름의 방죽이 있고, 동남쪽 모퉁이에는 불체(佛體)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으며, 그 동쪽에는 또 천왕(天王)이라는 이름의 다른 연못이 있다. 서남쪽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그 칭호는 달불(達佛)이요, 그 성의 남쪽에 산이 있는데 그 명호가 또한 불산(佛山)이다. 이름이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니고 이치상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승지(勝地)에 부여된 이 이름이 좋은 때가 오면 반드시 응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중알찬은 걸출한 대부(大夫)이다. 뜻을 분발할 기회가 오자 일찍이 풍운(風雲) 속에서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였고, 몸을 닦는 방향으로 품행을 바꿔 수토(水土)에 은혜 갚기를 소원하였다. 표범처럼 변신하여 삼해(三害)를 모조리 제거했는가 하면, 뱀처럼 도사리고서 구사(九思)를 더욱 신중히 하였다. 일단 악인들을 숙청할 수 있게 되자 이에 기필코 향리로 복귀하려 하였다. 거하는 곳마다 감화될 터이니, 어디에 간들 좋지 않겠는가. 마침내 높다란 구릉을 택하여 보루(堡壘)를 쌓았다. 흐름을 굽어보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깎아지른 절벽과 같았고, 험한 언덕을 등지고 가지런히 이어진 모습이 길다란 구름과 같았다.
이렇게 해서 서쪽 기전(畿甸)을 조용히 지키는 한편으로, 남쪽 밭두둑에서 짝을 지어 농사를 지었다. 그 지역의 토착민들을 어루만져 보살핌은 물론이요, 빈객과 붕우들을 성의껏 접대하였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아도, 그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바다와 같았다. 귀찮게 부탁하는 일이 있어도 거절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힘써 주었다.
게다가 뜻이 삼귀(三歸)에 절실하였고 몸은 육도(六度)를 행하였다. 돈오(頓悟)를 하면 아침에는 범부(凡夫)였다가 저녁에는 성인(聖人)이 될 것이요, 점수(漸修)를 하면 소가 가고 대가 올 것小往大來인데, 이는 모두 자기를 꾸짖기를 원수처럼 하고 승려를 공경하기를 부처처럼 하는 데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항상 불법(佛法)과 관련된 일을 경영하였을 뿐 다른 인연에 이끌리는 일은 있지 않았으니, 실로 불 속에서 연화(蓮花)가 피는 것과 같다 할 것이요, 서리 속의 계수(桂樹)처럼 홀로 절조를 보인 것과 같다 할 것이다.
더구나 그의 부인은 본디 나무랄 데 없는 주부로서, 사덕(四德)이 넉넉하였으며 한마디도 실수가 없었다. 바람결에 옥게(玉偈)를 들으면 반드시 마음으로 귀의하곤 하였으며, 날마다 금경(金經)을 외우면서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으니, 이는 곧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화장품을 대신한 것이요, 지혜를 밝히는 것으로 경대(鏡臺)를 삼은 것이었다. 아름다운 명성이 크게 드러남에 따라 온갖 복이 널리 모여들었으니, 옛날의 이른바 이런 아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이런 남편이 있었겠는가.不有此婦 焉有此夫라는 말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알찬(閼粲)은 참으로 재가(在家)의 대사(大士), 울연히 본국의 충신이었다. 반야(般若 지혜)로 간과(干戈)를 삼고, 보리(菩提 깨달음)로 갑주(甲胄)를 삼아 한 경내를 제대로 안정시켰는데 그 일이 겨우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개가 드높은 자는 지망(志望)이 유달리 고상하고, 마음이 올바른 자는 신교(神交)가 반드시 정대하게 마련인데, 용년(龍年) 양월(羊月) 경신일(庚申日) 밤에 알찬이 꿈을 꾸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달불성(達佛城) 북쪽 마정계사(摩頂溪寺)에서 보건대, 연화좌(蓮花座)에 안치된 하나의 큰 불상이 하늘 끝까지 높이 잇닿아 있고 좌측에 있는 보처보살(補處菩薩)의 높이도 역시 그러하였다. 남쪽으로 가다가 시냇가에서 한 여자를 보고는 불상이 그렇게 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 우바이(優婆夷 여자 불교 신도)가 대답하기를 이곳은 거룩한 땅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보건대 성 남쪽 불산(佛山) 위에 일곱 개의 미륵(彌勒) 불상이 몸을 포개고 어깨를 밟힌 채 북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서 공중에 높이 걸려 있었다. 또 며칠 밤이 지나서 다시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성 동쪽 장산(獐山)에서 취의(毳衣)를 입고 있는 나한승(羅漢僧)을 보니, 검은 구름을 좌석으로 삼고 무릎을 안은 채 그 산의 어귀가 되는 지점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말하기를 이처도(伊處道)가 이 지점을 통과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올 때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알찬은 꿈에서 깨어나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을 아직도 후회하지 않고 있고, 대지도 여전히 간악한 자들을 용납하고 있다. 시대가 위태로우면 생명들 모두가 위태롭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물정(物情)도 어지럽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먼저 깨달은 사람처럼 되었으니, 신중히 뒷날을 위해 도모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다. 지금 꿈속에서 이상한 징조를 보았고 눈으로 기이한 현상을 접하였다. 지금 산과 바다를 비익(裨益)할 것을 바란다면, 어찌 한 줌의 흙이나 한 방울의 물이라도 보태는 것을 부끄러워하겠는가. 결단코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아마도 불사(佛事)를 융성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라는 바는 어두운 곳이 생기지 않게 하고 길 잃은 중생들을 널리 깨우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법등(法燈)을 높이 매달아 병화(兵火)를 속히 해소해야 하겠다.’
그러고는 승경(勝景)에 터를 잡고 멋진 누대를 높이 세운 뒤에 은 등잔의 불을 밝혀 철옹성을 진압함으로써, 촉룡(燭龍)이 입을 열어 영원히 어둠을 쫓아내고 수상(燧象)으로 하여금 몸을 태우는 일이 없게끔 하였다. 그해 초겨울에 등루를 세우고 나서 114일에 이르러 공산(公山) 동사(桐寺)의 홍순 대덕(弘順大德)을 초청하여 좌주(座主)로 삼고 재()를 베풀어 경찬(慶讚)하였다. 이때 태연 대덕(泰然大德)과 영달 선대덕(靈達禪大德)과 경적 선대덕(景寂禪大德)과 지념 대덕(持念大德)과 연선 대덕(緣善大德)과 흥륜사(興輪寺)의 융선 주사(融善呪師)와 같은 고승들이 모두 참여하여 법회를 장엄하게 하였다.
묘하도다, 이 공덕이여. 팔각등(八角燈)에서 발하는 아홉 가지 광채와 밤새도록 사방을 밝히는 불빛이 어두운 곳이면 어디든 비추지 않는 곳이 없이 감응을 하면 반드시 통하게 하였으니, 아나율(阿那律)이 등불 심지를 바로잡은正炷인연유마힐(維摩詰)이 등불을 전한傳燈설법이 완연히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뛰어난 의표(儀表)를 널리 보인 것은 알찬을 두고 한 말이요, 정광여래(錠光如來)와 도리천녀(忉利天女)가 전공(前功)을 버리지 않아 후세에 뛰어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그의 부인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멀리서 졸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 취지는 큰 서원을 서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감히 그 일을 곧바로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을 경계하게 되었다. 집안일을 잊고서 도에 헌신한 그 공은 길이 전해질 것이요, 호국(護國)이라고 이름 붙인 성()의 명칭 역시 기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 덕이 이미 자랑할 만한 것인 만큼, 나의 글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하겠다.

 

[D-001]삼해(三害) : ()나라 때 남산(南山)의 범과 물속의 뱀과 주처(周處)가 향리에서 세 가지 해악으로 꼽혔는데, 나중에 주처가 개과천선하여 범을 사살하고 뱀을 때려잡아 편안하게 한 뒤에 뜻을 분발하여 학문에 매진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58 周處列傳
[주D-002]구사(九思) :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聽思聰, 안색을 온화하게 하기를 생각하고色思溫, 용모를 공손하게 하기를 생각하고貌思恭, 진실하게 말하기를 생각하고言思忠, 공경히 일할 것을 생각하고事思敬, 의심나면 묻기를 생각하고疑思問, 화나면 어려움을 생각하고忿思難,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見得思義등이다. 論語 季氏
[주D-003]삼귀(三歸) :
삼보(三寶) 즉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에 귀의하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삼귀의(三歸依)라고 칭한다.
[주D-004]육도(六度) :
생사의 차안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섯 개의 법문이라는 뜻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라고도 하는데,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정려(靜慮), 지혜(智慧) 등으로 되어 있다.
[주D-005]소가 …… 것 :
주역》 〈태괘(泰卦) 괘사(卦辭)태괘는 음()인 소가 가고 양()인 대가 오는 상()이니, 길하고 형통하다.泰 小往大來 吉亨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6]불 …… 것 :
유마경(維摩經)》 〈불도품(佛道品)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은 희유한 일이라고 말할 만하다. 마찬가지로 욕망 속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희유한 일이다.火中生蓮花 是可謂稀有 在欲而行禪 稀有亦如是라는 말이 나오는데, 번뇌 속의 중생이 해탈을 이룰 수 있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주D-007]사덕(四德) :
옛날에 부녀자가 갖추어야 할 규범으로 꼽혔던 부덕(婦德), 부언(婦言), 부용(婦容), 부공(婦功)을 말한다. 周禮 天官 九嬪
[주D-008]이런 …… 있었겠는가 :
()나라 범녕(范甯)이 생질인 왕침(王忱)의 풍류를 칭찬하자, 왕침이 이런 외숙이 안 계시면, 어떻게 이런 생질이 있겠습니까.不有此舅 焉有此甥라고 답변한 고사가 유명한데, 고운이 이를 변용한 듯하다. 晉書 卷75 王湛列傳 王忱
[주D-009]보건대 :
대본에는 로 되어 있는데, 문맥으로 보아 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0]취의(毳衣) :
승려가 입는 네 종류의 의복 가운데 하나로, 새털로 짜서 만든 옷을 말한다.
[주D-011]이처도(伊處道) :
이차돈(異次頓)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한다. 대본의 원주에 목숨을 바쳐 불법을 일으킨 열사이다.殉命興法之烈士也라고 하였다.
[주D-012]촉룡(燭龍) :
촛불을 입에 물고 비춰 주는 용이라는 뜻이다. 전국 시대 초()나라 굴원(屈原)천문(天問)태양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텐데, 촉룡이 어째서 비춰 주는가.日安不到 燭龍何照라고 하였는데, 후한(後漢) 왕일(王逸)의 해설에 하늘의 서북쪽에 해가 없는 암흑의 나라가 있는데, 그곳은 용이 촛불을 입에 물고 비춰 준다.天之西北有幽冥無日之國 有龍銜燭而照之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3]수상(燧象) :
꼬리에 불을 붙여 적진에 뛰어 들게 하는 코끼리라는 뜻으로, 전쟁을 상징한다. 춘추 시대 오()나라와 초()나라가 교전할 때에 초왕(楚王)이 이 전법을 사용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定公4
[주D-014]아나율(阿那律)이 …… 인연 :
아나율은 범어(梵語) Aniruddha의 음역으로, 불타의 종제(從弟)이면서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불타의 설법 중에 잠을 잤다는 책망을 받은 뒤로 서원을 세우고 잠을 자지 않다가 눈병에 걸려 실명하였으나 수행에 더욱 정진한 결과 천안제일(天眼第一)이 되어 천상과 지하의 육도(六道) 중생을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전생에 도둑이 되어 절에 훔치러 들어갔다가 꺼지려 하는 등불의 심지를 화살로 바로잡아 돋운以箭正燈炷인연으로 불제자(佛弟子)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주D-015]유마힐(維摩詰)이 …… 설법 :
인도(印度) 비야리성(毗耶離城)의 유마힐이 속인인 거사(居士)의 신분으로 당당하게 불조(佛祖)의 뒤를 이었다는 말이다. 유마힐이 중생의 병이 다 낫기 전에는 자신의 병도 나을 수 없다면서 드러눕자, 석가모니가 문수보살(文殊菩薩) 등을 보내 문병하게 하였는데, 문수가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유마힐이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문수가 탄식하며 이것이 바로 불이법문으로 들어간 것이다.是眞入不二法門也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維摩經 文殊師利問疾品

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현 () 2009

 

 

 

 

팔각등루 2008.05.27

아래와 같다. (1) 天佑 5년(908년 ; 효공왕 15년) 戊辰 冬十月에 護國義營都將 重閼粲 異才 南嶺에 八角燈樓를 세웠다. 나라의 경사를 빌고 전쟁의 화를 물리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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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등루는 수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