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丘邑誌 이 책은 김택규, 박대현에 의해 번여되어 있다. 이들의 번역을 바탕으로 1907년 대구부읍지도 번역되었으면 한다.
大丘邑誌 1768 영조 44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550000,22
명 칭
대구읍지 (大丘邑誌)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수량/면적
1책
지정(등록)일
2010.01.20
소 재 지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달구벌대로 1095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대구광역시 달서구 문화공보과 053-667-2171
대구읍지는 영조 44(1768)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의 하나로 조선 영․정조 연간의 대구의 역사, 산업, 문화, 행정사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큼
https://www.dalseo.daegu.kr/pages/tour/page.html?case=view&num=0000000063&page=1&search=&se_word=&tab4=2&large_code=40&medium_code=30&small_code=10&mc=90
지정별 : 시지정문화재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55호
소재지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지정일 : 2010. 1. 20
소유자 : 계명대학교
수량 : 1책 1권
연대 : 1768년(영조44년)
상세내용
이 책은 1768년(영조 44)에 대구부에서 편성한 필사본 읍지로, 현재 전하고 있는 『대구읍지』 가운데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내용은 建置沿革, 郡名, 官職, 姓氏 山川, 坊里 등을 포함하여 學校, 先生案, 科擧, 人物, 題詠, 碑板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전체 장수는 100장이다.
이 가운데 선생안에는 營先生案(관찰사), 邑先生案(대구부사, 대구판관)과 都事, 營將 등의 명단이 실려 있다. 영선생안에는 1078년(고려 문종 32)에 都部署使였던 李濟元을 포함하여 1767년(영조 43)의 경상도관찰사 趙暾까지 명단이 실려 있는데, 죄를 받았던 관찰사 鄭造, 李師尙, 金尙魯 등의 성명에는 사각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구읍지[ 大丘邑誌 ]
대구읍지
대구부(편), 『대구읍지』, 필사본, 1768년경, 1책,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1765년경에 완성된 『여지도서』의 항목 구성 체제를 수용하여 대구부에서 편찬한 읍지이다. 당시 대구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을 풍부하게 담고 있고, 편찬 방식이 이후의 읍지에도 이어지고 있어서 사회정치사 및 지리지 변천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편저자 대구부
제작시기 1768년(영조 44)
권수·책수 1책
소장처 대구 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번지
관리자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문화재 지정번호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
문화재 지정일 2010년 1월 20일
집필자 이기봉
정의 대구부에서 1768년(영조 44) 경에 편찬한 필사본의 대구읍지.
개설 1757년(영조 33) 영조의 명을 받아 시작된『여지도서(輿地圖書)』의 편찬 사업은 각 고을에서 작성하여 올려 보낸 읍지를 중앙에서 재편집하여 1765년(영조 42) 경에 완성되었다.『여지도서』는 중앙 주도로 이루어진 전국 고을지리지이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의 항목 구성이 거의 동일하게 편제되었는데, 이후의 읍지(邑誌), 도지(道誌), 전국지리지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68년(영조 44)경에 편찬된『대구읍지』역시『여지도서』에 수록된 대구읍지의 영향을 받아 항목의 구성이 거의 비슷하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후기 대구의 단독 읍지는 중앙 정부의 전국지리지 편찬 경향과 궤를 같이하여 1697년(숙종 23), 1757년(영조 35) 2차에 걸쳐 편찬되었다. 하지만 이들 읍지가 18세기 중반 대구의 정치적․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편찬된 것이 바로 1768년(영조 44)경의『대구읍지』다.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0년 1월 20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서지적 사항
1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세로×가로 크기는 33.5×22.2cm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곽(半郭)의 크기는 24.6×16.2cm이다.
내용
읍지의 항목 순서는 지도(地圖)-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산천(山川)-풍속(風俗)-방리(坊里)-호구(戶口)-전부(田賦)-군액(軍額)-성지(城池)-창고(倉庫)-관방(關防)-진보(鎭堡)-봉수(烽燧)-학교(學校)-단묘(壇廟)-능묘(陵墓)-불우(佛宇)-궁실(宮室)-누정(樓亭)-도로(道路)-교량(橋梁)-도서(島嶼)-제언(堤堰)-장시(場市)-역원(驛院)-목장(牧場)-형승(形勝)-고적(古蹟)-토산(土産)-진공(進貢)-봉름(俸廩)-환적(宦蹟)-과거(科擧)-인물(人物)-제영(題詠)-비판(碑版)-책판(冊板)-추록(追錄)으로 되어 있다.『여지도서』에 수록된 대구읍지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흔적은 첫째, 장시(場市)와 추록(追錄)이 첨가된 것을 제외하면 항목의 구성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 둘째, 대구에는 없는 관방․진보․도서의 항목까지 설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여지도서』처럼 전국지리지의 일부가 아니라 개별 읍지로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항목에서 대구지역의 사회적․정치적 여러 욕구를 수록하고 있어 내용이 훨씬 많고 자세해졌다.
의의와 평가
16세기 이후 사찬(私撰) 읍지의 유행과『여지도서』란 관찬(官撰) 읍지 편찬의 경험이 결합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개별 읍지 중의 하나다. 또한 18세기 중후반 대구지역의 사회적․정치적 현실이 풍부하게 담겨 있고, 항목의 구성과 내용 서술의 방식이 1832년경의 대구 읍지에 계승되고 있다. 따라서 대구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사회정치사 및 지리지 변천사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청(www.cha.go.kr)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kimsweb.kmu.ac.kr)
대구읍지 [大丘邑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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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정보 역사 >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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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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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리 > 인문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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