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월 1일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과 성서면이 대구시에 편입되었다. 월배면(조암⋅ 월배)과 성서면의 일부(감물천)는 조선 후기 화원 8방(면), 곧 화원현(花園縣)에 속한 지역이었다. 하나의 고을로 인식되어오던 화원 지역이 별개의 행정 구역인 달성군 지역과 대구시 지역으로 분리된 것이다. 월배와 성서 지역은 1963년 1월 1일 달성군에 환원되었으나, 1981년 7월 1일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다시 대구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대구는 광역시로 개칭되었고, 3월 1일에는 달성군 전체가 대구에 편입되었다. 현재 화원읍(화현내⋅인흥)과 옥포면(옥포⋅성평곡⋅법화)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소속이고, 이전에 편입된 월배(월배⋅조암)⋅성서(감물천 합속) 지역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속해 있다.
1959년 옛 화원현에 살고 있던 지역 인사들은 『금성집언(錦城輯言)』을 바탕으로 1960년 『금성지(錦城誌)』를 발간하였다. 이 책은 우홍훈이 가장 먼저 『금성집언』의 속편(續編)을 주창하였으며, 표정홍, 이배원, 최주집, 허홍, 문시채, 우태기 등이 찬성하여 교정의 책임을 맡는 등 화원현 각 문중의 협찬을 받아 전통적인 방식으로 펴낸 마지막 읍지이다. 『금성지』는 『금성집언』의 해당 항목을 모두 포함하면서 수정 증보하거나 변화된 근대 문물을 분류하여 싣고 있다.
예전에 쓴 논문이 있다.
이재두, 20161130, 「조선 후기 속현 단위 읍지 편찬의 배경과 목적-대구 화원현 읍지 『금성집언』(1788)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125, 대구사학회, 111-140쪽
이 글은 1788년(정조 12) 이수완(李壽完)이 편찬한 화원현 읍지인 『금성집언(錦城輯言)』을 분석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성주목에 속하였던 화원현(화원 8방)은 1685년(숙종 11) 경상 감영 소재지인 대구도호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1788년(정조 12) 화원현의 사족인 이수완은 이 지역의 읍지인 『금성집언』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일종의 속현(屬縣) 지역에서 편찬한 읍지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의가 크다. 이보다 앞선 1749년(영조 25) 권상일이 『상산지』를 증보하면서, 상주목 속현인 산양현(산양 5면)의 읍지인 『산양지』 편찬을 시도한 기록이 보이나 현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이 무렵 『상산지』 증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단밀현지』가 남아있다.
『금성집언』은 성주읍지인 『경산지』의 화원현 관련 내용을 위주로 하였으며, 『여지도서』와 『대구읍지』의 구성 항목에 따라 이들 읍지에서 누락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완하였다. 이 책은 속현 사족(士族)들이 중심이 되어 읍지 편찬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역이 소외된 것에 반발하면서, 지역 사족의 현양(顯揚)과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지역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기 위해 편찬한 읍지이다. 『대구읍지』와 비교해 보면, 방리(坊里)를 비롯하여 명승(名勝), 패설(稗說), 이문(異聞) 등 화원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故事]가 풍부하게 실려 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수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대구읍지』 편찬 기준에는 미흡한 화원현 지역 단위의 인물들이었다. 일연이나 이숭인, 정구 등 전국적인 인물을 발굴하려는 노력도 부족하였다. 18세기 말 당시의 지역 사회 사족들을 중심으로 자신들과 관련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수록하고자 한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주제어: 속현(屬縣), 읍지(邑誌), 화원현(花園縣), 『금성집언(錦城輯言)』, 『대구읍지(大丘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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