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화원현(花園縣)과 풍각현(豊角縣)이 대구에 편입된 시기는 조선 숙종(肅宗) 을축년(1685, 숙종 11)이다.

시골(是滑) 2023. 8. 19. 16:35

화원현(花園縣)과 풍각현(豊角縣)이 대구에 편입된 시기는 조선 숙종(肅宗) 을축년(1685, 숙종 11)이다.
조선후기 경상감사와 대구부사를 분리한 시기는 세 차례(1656~1669, 1677~1684, 1755~1758) 23년이었다.

[신 속현(屬縣)[新屬]]
화원현(花園縣) 관아의 서남쪽 30리에 있다. 본래 신라의 설화현(舌化縣)이다. 경덕왕때 지금의 이름인 화원(花園)으로 고쳐서 수창군에 소속시켰다. 고려 현종때 성주(星州)에 소속시켰다. 조선 숙종(肅宗) 을축년(1685, 숙종 11)에 대구에 편입되었다.
풍각현(豊角縣) 관아의 남쪽 70리에 있다. 본래 상화촌현(上火村縣)이다. 고려때 유산(幽山)으로 이름을 고쳐서 밀양(密陽)에 소속시켰다. 조선 숙종 을축년에 대구에 편입되었다. 『국역 여지도서』 대구진관 대구도호부 건치연혁 신속.

[참고] 만력(萬曆) 신축년(1601, 선조 34)에 감사(監司)가 부사府使)를 겸하도록 하고 판관(判官)을 두었다. 병신년(1656, 효종 7)에 다시 부사를 두었다가, 무신년(1668, 현종 9)에 유영 겸 부사(留營兼府使)를 두고 판관을 두었다. 정사년(1677, 숙종 3)에 판관을 혁파하고 부사로 승격시켰으며, 갑자년(1684, 숙종 10)에 감사가 부사를 겸하도록 하고 판관을 두었다. 영조(英祖) 을해년(1755, 영조 31)에 판관을 혁파하고 부사로 승격시켰으나, 무인년(1758, 영조 34)에 다시 판관을 두었다. 『국역 여지도서』 대구진관 대구도호부 건치연혁.

『여지도서』에는 1668년(戊申)으로 되어 있지만 『대구읍지』(1768) 환적 읍선생의 대구부사와 대구판관 부임시기를 보면, 1669년(己酉, 현종 10)부터였다. 대구부사 최응천(崔應天)은 무신년(1668) 8월에 도임하였지만, 기유년(1669) 7월에 판관으로 관직이 강등되었기 때문에 이해 9월에 진주목사로 이배되었다.

『국역 여지도서』 경상도 관찰영. 숙종(肅宗) 병진년(1676, 숙종 2, 대구편에는 1677)에 부사를 겸하던 제도를 혁파했다가 갑자년(1684, 숙종 10)에 다시 부사를 겸하도록 하고 판관을 두었으며, 을축년(1685, 숙종 11)에 성주 화원, 밀양(密陽) 풍각(豊角)을 떼어 소속시켰다. 영조(英祖) 신미년(1751, 영조27)에 부사를 겸하던 제도를 혁파하고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던 관례를 없앴다가, 무인년(1758, 영조 34)에 다시 부사를 겸하며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