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야외 박물관(월파원, 月波園)에서도 유명악 선정비를 만날 수 있다. 이 비들은 대구의 옛 수성현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도시가 개발되면서 가까운 수성초등학교 안에 모아 두었던 것을 1994년 7월에 경북대학교 안의 현재 자리로 옮겨 왔다. 비석 하나는 어느 면에서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나머지 셋은 각각 수남면, 수북면, 수현내면에서 세운 것이다. 옛 수성현 6개면에서 세운 유척기 선정비도 1994년 수성초등학교에서 옮겨온 것이다. 김택규, 박대현 번역 <<대구읍지>>(1768, 영조 44?) 방리에 의하면, 당시 대구부는 32개 방리(면)가 있었고, 옛 수성현 지역에는 수현내, 수북, 수동, 상수서, 하수서, 상수남, 하수남 등 7개면이 있었다. 유명악비에 수남면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에는 수남면이 상하 두개의 면으로 나누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각 지역은 <<대구읍지>>에 각북과 각남만 나오는데 이후 어느 시기에 각현내, 각북, 각초동, 각이동의 4개 면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하여 1906년 풍각 지역이 청도군으로 옮겨질 때까지 대구는 34개면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여겨진다.
판관 유후 명악 영세 불망비(判官兪候命岳永世不忘婢) 을미(1715) 3월 일립
판관 유후 명악 청덕 선정비(判官兪候命岳淸德善政婢) 병신(1716) 3월 일 수남면 입
휘 명악 자 군사 판관 유후 청덕 애민 선정비(諱命岳字君思判官兪候淸德愛民善政婢) 병신(1716) 3월 일립 수북
판관 유후 명악 거사비(判官兪候命岳去思碑) 병신(1716) 8월 일 수현내 입
관찰사 유상국 척기 영세불망비(觀察使兪相國拓基 永世不忘碑) 옹정 경술(영조 6, 1730) 4월 수6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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