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조선 후기 『대구읍지』 편찬과 사족의 대응

시골(是滑) 2016. 12. 6. 11:09

조선 후기 대구읍지편찬과 사족의 대응

- 인물 수록 시기 분석을 중심으로 -

 

대구읍지1637년 처음 편찬된 이래, 1697년 현감 우석규, 1757년 진사 조춘경에 의하여 증보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전하는 대구읍지(1768)는 조춘경 등이 중심이 되어 여지도서의 저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구읍지1786년 우재악, 서발, 도술모 등이 수정보완하였다. 대구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읍지를 목판으로 제작하지 못했다. 20세기 들어 1908년 채헌식과 이병달이 인쇄 반포하였다고 하나 남아 있지 않으며, 1924년에는 서석태가 속수하여 활자로 인쇄한 읍지가 남아 있다.


대구읍지는 전국 읍지 상송령에 따라 편집된 경상도읍지(1832)ㆍ『영남읍지(1871)ㆍ『영남읍지(1895)의 일부, 혹은 대구부읍지(1899)로 보관되어 있으며, 경상도읍지(1832) 초고본인 국립중앙도서관의 대구부읍지도 남아 있다. 경상도읍지(1832) 이후 수정 증보된 내용을 보면, 통치 자료가 되는 호구, 전부, 군액, 창고 등의 현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환적을 추기하는 정도이다. 과거편은 추가한 인물이 아예 없으며, 인물편은 경상도읍지초고본에 추기한 이래 더 이상의 추가는 없었다.


대구읍지과거편이 1637년 읍지를 처음 편찬할 당시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풍각과 화원 지역이 대구에 편입되면서 읍지 증보가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1697년 읍지에는 밀양을 연고로 하는 많은 인물들이 수록되었다. 18세기 중엽 여지도서편찬을 위한 증보 작업이 이루어졌고, 중앙으로 읍지를 보낸 이후인 1768년 읍지에는 두 명의 인물을 추가하였다. 1786년 추가된 인물 10명 중 8명은 고려 말 이래 인조 때까지의 인물이다. 이는 과거 합격순으로 입록하는 관행을 어긴 것이다.


1786년 이후 대구읍지에서는 18세기 말 이후의 과거 합격자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결국 1786년 읍지 증보 때 과거 합격자를 마지막으로 추가 입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보 사실은 경상도읍지(1832) 초고본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1786년의 읍지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읍지인물편에서는 수록 인물의 추가 과정을 통해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사회를 주도해 나간 사족의 확대 양상을 살필 수가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읍지만으로는 1637년 읍지를 처음 편찬할 당시 수록되었거나 수록되었다가 배제된 인물이나 정보들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박한주와 박수춘은 대구읍지여지도서대구의 인물편에 실려 있지만, 여지도서밀양에서도 각각 우거와 인물편에 실려 있다. 풍각 지역이 대구에 편입되면서 밀양도호부의 인물들이 대구읍지의 과거편과 인물편에도 많이 수록되었으나, 그들은 밀양읍지에도 여전히 실렸다.


대구읍지인물편은 대구 지역 사족들이 자신의 선조를 읍지에 싣기 위하여 정구의 문인임을 밝히려고 노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읍지인물편에 보이는 정구의 문인 22명은 16374명이 처음 수록된 이래, 169715명이 추가되었고, 18323명이 추가되었다.


조선 후기 지역 사회에서 인물들의 읍지 입록은 후손들이 사족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대구 지역 사족들은 자신들이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조가 읍지의 과거편이나 인물편에 수록되어야 했다.


대구 지역에서는 읍지 편찬 과정에서 새로 편입된 풍각과 화원 지역 중에서 화원 지역(화원 8) 사족들의 불만이 강하였다. 화원 지역에서는 대구읍지에 화원 지역 인물들이 제대로 수록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화원읍지라 할 수 있는 금성집언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대구읍지는 관과 유착된 서인노론계 사족들이 편찬을 주도하면서 지역내 남인계 사족 세력이 불만을 가졌거나, 아예 사족 세력을 배제하고 관이 중심이 되어 향리들이 주도하였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는 19세기의 읍지에 지역 사회의 주요 인물들이 전혀 수록하지 않은 데서도 알 수 있다.

                                                        영남학29, 341~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