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곤 교수는 ‘諺傳嘉昌都護府 又降爲監務 其升降年代未詳’ 기록을 바탕으로 940년(태조 23)부터 1018년까지 가창도호부가 존재하였으며, 1018년 수성군이라는 명칭으로 동경유수관의 속읍으로 편제되었다고 보았다. 당시 이 지역은 경주로 가는 교통로상의 군사적 요충지로 수성군 영현 조직은 가창도호부의 군사적 조직으로 개편 지배되었으며, 감무로의 강등은 자료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것으로 오류라 보았다.
<대구시사 1>, 1995, 312-320쪽.
경상도 지리지에는 諺傳으로 嘉昌都護府, 高陽大都護府(고령)가 나오는데 나말여초의 정세 변화를 변화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가창도호부는 군사적 기능이 강화되었지만 1018년까지 이전의 수창군 지역을 관한 것으로 보는 연구가 있다.
수성현 관할하에 있던 豆也只部曲은 경산현의 직촌이 되었는데 지금의 시지 지역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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