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가창초등 송덕비

시골(是滑) 2015. 5. 12. 13:40

통정대부 관찰사 겸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대구도호부사
정익하 1739(영조 15). 11. 28-1741. 6. 4. 계유(1753)
이익보 1755. 10. 22-1756. 11. 11. 무인(1758)
윤동도 1752. 7.-1754. 1. 무인(1758)
민백상 1749. 2. 1.-1751. 6. 15. 계유(1753)

이 네 비석은 1753년에 정익하와 민백상의 비가, 1758년에 이익보와 윤동도의 비가 세워졌으므로 순서가 잘못되어 있다. 가운데 비석이 더 오래된 듯하나, 뒤의 것이다.

오동원은 가창초등 건너편에 있었던 모양이다.

 

 

 

 

 

 



경북대 야외 박물관(월파원, 月波園)에서도 유명악 선정비를 만날 수 있다. 이 비들은 대구의 옛 수성현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도시가 개발되면서 가까운 수성초등학교 안에 모아 두었던 것을 1994년 7월에 경북대학교 안의 현재 자리로 옮겨 왔다. 비석 하나는 어느 면에서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나머지 셋은 각각 수남면, 수북면, 수현내면에서 세운 것이다. 옛 수성현 6개면에서 세운 유척기 선정비도 1994년 수성초등학교에서 옮겨온 것이다. 김택규, 박대현 번역 <<대구읍지>>(1768, 영조 44?) 방리에 의하면, 당시 대구부는 32개 방리(면)가 있었고, 옛 수성현 지역에는 수현내, 수북, 수동, 상수서, 하수서, 상수남, 하수남 등 7개면이 있었다. 유명악비에 수남면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에는 수남면이 상하 두개의 면으로 나누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각 지역은 <<대구읍지>>에 각북과 각남만 나오는데 이후 어느 시기에 각현내, 각북, 각초동, 각이동의 4개 면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하여 1906년 풍각 지역이 청도군으로 옮겨질 때까지 대구는 34개면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여겨진다. 수현내면 상동에 위치한 수성초등학교는 1921년 10월 6일 대구수성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22년 5월 1일 대구수성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