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곽준] 정출헌, 17세기 전반 재지사족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기억의 정치학

시골(是滑) 2016. 12. 6. 17:07

17세기 전반 재지사족의 자기정체성 확립과 기억의 정치학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엇갈린 기억의 용문몽유록을 중심으로

정출헌, 2011, 민족문학사연구 46, pp.85-119.

정유재란 중에 겪은 황석산성의 함락은 안음현감 곽준을 비롯하여 인근 지역의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참혹한 전란이 끝난 뒤, 조정에서는 그날의 죽음에 대한 포폄을 통해 전후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곽준과 같은 충의의 인물을 포상하는 한편 백사림과 같은 비겁한 인물을 징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선별 작업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관계를 입증할 만한 근거란 생존자의 희미한 기억과 그에 대한 지역사족의 정황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억하고 있는 자와 판단하고 자의 객관성이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합의된 공론에 이르기란 그야말로 지난(至難)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안음 지역의 인물·명승·고적·시사(詩史) 등을 다루고 있는 용문몽유록(龍門夢遊錄)은 재지사족의 이런 전후 복구 노력, 보다 구체적으로는 안음읍지편찬 과정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논란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창작된 작품이다.

안음의 유력한 재지사족이었던 작가 신착은 꿈의 서사 형식을 빌려 시비가 일고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이다. 황석산성에서 죽은 인물 가운데 충의·효자로 추숭할 만한 인물이 누구인가를 천명하고 있는 부분이 전반부라면, 안음현의 명승·고적·시사 가운데 올바르게 실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 후반부이다. 그건 17세기 전반부터 재지사족의 주도로 활발하게 편찬되던 사찬읍지의 인문지리적 성격과 일치한다.

재지사족에게 있어 지역의 인물지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온전한 자신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읍지의 편찬은 재지사족이 지역사회에서 자기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향촌사회의 지배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때문에 재지사족 간에 쉽게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때문에 재지사족 간의 치열한 경합은 물론 중앙의 정치권력이라든가 인접지역의 사족들과 적극적인 연계를 모색하기도 했다.

작가 신착이 황석 제공 선정에 대한 논란에 자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것이라든가 정온이 중앙정계의 이원익을 비롯하여 인근 지역의 최현·이준과 같은 유력 사족의 적극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그런 실천적 사례의 하나이다. 그 과정에서 재지사족은 읍지 편찬이라든가 향안(鄕案) 작성은 물론 몽유록과 같은 몽유서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문학과 정치가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는 구체적 실상을 목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