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곽준, 실록에 실린 1문 3강의 이미지

시골(是滑) 2016. 12. 6. 17:07

실록에 실린 13강의 이미지

인조실록1(1623) 112(무오)

안음 현감 곽준을 치제(致祭)하고 그의 무덤을 지키는 사람을 두도록 명하였다. 곽준은 학문에 종사하여 고을 사람들이 평소 선사(善士)라고 일컬었다.

임진년(정유재란)에 안음 현감이 되었는데, 산성을 수리하여 굳게 지킬 계책을 세웠다. 성이 적에게 포위되자 밤낮으로 전투를 독려했으나 성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성에 밧줄을 내려 밤에 도망갔다. 그의 두 아들도 아비에게 성을 나가 몸을 피할 것을 권유했으나 곽준은 듣지 않았다.

적이 성을 올라왔을 때도 곽준은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떠나지 않았는데, 적이 마침내 그를 죽였다. 이때 두 아들도 몸으로 아비를 가려 보호하려다 삼부자가 동시에 죽었다. 그의 딸도 사인(士人)의 처로서 남편을 따라 병화를 피하다가 남편이 적에게 사로잡히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니, 열의 절개가 한 집안에서 나왔다.

선조조에 병조 참의를 추증하고 사제하였으며, 폐조(廢朝, 광해군) 때에도 증직을 더하고 사제하였는데, 연신(筵臣) 정경세가 다시 표창하여 격려하고 권장하는 바탕으로 삼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명이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