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현풍초등학교의 역사, 보통학교와 소학교

시골(是滑) 2014. 9. 13. 09:58

현풍초등학교는 1906년 4월 1일 사립 구양학원으로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현풍군수인 김승표이고, 학교터는 당시의 동헌 터였다. 구양은 당시 현풍천이 구천의 양지바른 곳이란 뜻이다. 현풍학교의 수업 연한은 처음 3년이었다가 1911년 9월 1일 현풍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되면서부터는 4년으로 늘어났다. 현풍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된 시기를 “현풍초등 100주년사”는 1910년으로 적고 있으나, “달성군 군세 일람”에는 1911년 8월, 당시 총독부 관보 1911년 07월 25일자에는 경산, 선산 등 15개교와 함께 明治 44年 7月 24日 設置를 認可받은 것으로 나온다. 1922년부터는 6년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1924년 3월 졸업한 12회는 4년제, 1925년에는 학년 연장으로 졸업생이 없었고, 1926년 6년제 졸업생이 졸업하였다. 이후 현풍 학교는 1938년 4월 달남 심상소학교, 1941년 4월 달남국민학교, 해방된 1945년 10월 1일 현풍국민학교, 1995년 3월 대구현풍국민학교, 1996년 3월 대구현풍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왔다. 국민이라는 말이 황국신민의 줄임 말이라 하여 중고등학교의 예에 맞춰 초등학교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굳이 학교 이름 앞에 대구는 왜 붙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1931년에 출판된 “달성군 군세 일람”에 의하면, 화원과 현풍에 일본인만 들어갈 수 있는 소학교가 있었다. 현풍공립소학교는 대정 2(1913)년 3월 세워졌으며, 6년제로 1930년 당시 남학생 4명, 여학생 5명으로 교사는 남녀 1명씩이었다. 화원의 구남공립소학교는 1913년 10월에 세워졌으며, 남학생 16명에 여학생 24명으로 교사는 현풍과 같았다. 당시 현풍면 인구는 조선인이 9,117명, 일본인이 66명, 중국인이 22명이었다. 화원은 각각 6,522명, 126명, 0명으로, 중국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