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참 별별 죄수들의 별별 사연을 짧은 시로 담장 너머 내게로 전해준다 | 책읽기 2012.10.09 21:58:56
[ 도서 ]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박영희 | 푸른사상 |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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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군 남악리에서 태어나 대구 평리동에서 살고 있는 박영희 시인.
시인이라고는 하는데 그의 글을 시로 만난 적은 없다. 그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읽었고, 만주 이야기도 들은 듯하다. '만주'는 손바닥 안에 놓고 보는 듯하였다. 언제 시간을 내어 그와 함께 '만주'를 다녀오고 싶은데 때마다 놓치곤 한다.
우연히 그의 시집을 만났다. 그는 한때 태백에서 살면서 시집 '해 뜨는 검은 땅'을 내기도 한 모양이다. 그는 엉뚱하게도 '일제강점기 징용 광부들에 관한 서사시를 쓰고자 방북'하였다가 15년형을 받고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6년 7개월을 독방에 갇혀 보냈다. 그때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풀어내고 있다.
시를 읽으면서도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있어 감옥에서 시로 써 건져 낸 르포이다. 시인의 말처럼 '감옥일기'이다.
다음날 아침 정옥 씨는 / 머리를 감고 로션을 바른 뒤 / 어제 교도관에게 얻은 인주를 입술에 살짝 발랐다. //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날 / 5분이 될 지 / 10분이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여자이고 싶었다. (그런 사랑도 있더라 2 일부)
똑같은 얼굴 / 똑같은 머리 / 똑같은 옷 / 똑같은 플라스틱 숟가락 젓가락 / 똑같은 1식 3찬 // 한 해가 지날 무렵 나는 평등이 지겨워졌다. // 똑같은 6시 기상 / 똑같은 30분 운동 /똑같은 9시 취침 / 똑같은 주소 // 두 해가 지날 무렵 나는 개판이 그리워졌다. (지겨운 평등 전문)
시인은 참 별별 죄수들의 별별 사연을 짧은 시로 담장 너머 내게로 전해준다.
시집을 읽는 내내 오랫동안 우리 곁을 떠나 '학교'에서 지내는,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이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