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현풍석빙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골(是滑) 2014. 9. 19. 23:34

현풍석빙고(玄風石氷庫)

보물 제673호 달성군 현풍면 상리 638번지

 

 

현풍의 석빙고는 빙실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이고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출입구가 능선쪽인 남쪽에 마련되어 있다. 축조 방법이나 시설 등은 경주․안동․창녕 등 조선 후기의 석빙고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아직도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석빙고의 축조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어 확실하지 않았으나, 1981년 11월 석빙고 주위의 보수 작업 때 ‘숭정기원후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이라 쓰인 건성비(建成碑)가 발견됨으로써 1730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경주 석빙고(1733)와 안동 석빙고(1737~40)․창녕 석빙고(1742) 등 보다 앞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석빙고의 모범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고을마다 얼음곳간을 둔 것은 아니었는데, 그리 크지도 않은 현풍현에 석빙고를 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석빙고는 대구부에도 있었으나, 1906년 대구읍성이 헐릴 때 같이 헐리고 경북대학교 야외박물관(청파원)에 석빙고비만이 남아 전한다.

 

 

빙고(氷庫)는 얼음 저장 창고, 얼음곳간으로 오늘날 냉장고나 냉동 창고에 해당된다. 신라 시대부터 빙고전(氷庫典)이란 관직을 두었으며, 조선 시대 장빙제도(藏氷制度)가 있어 고종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개 성 밖의 강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홍보 문구의 일부를 옮겨본다. ‘총명함은 타고났으나 우의정의 서자요, 잡서적에 빠져 지내던 덕무(차태현). 얼음 독점권을 차지하려는 좌의정 조명수에 의해 아버지가 누명을 쓰게 되자 그의 뒤통수를 칠 묘안을 떠올린다. 바로 서빙고의 얼음을 통째로 털겠다는 것! 한때 서빙고를 관리했지만 조명수 일행에 의해 파직당한 동수(오지호)와 손을 잡은 덕무는 작전에 필요한 조선 제일의 고수들을 찾아 나선다.’

 

 

숭정기원(崇禎紀元)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 의종(毅宗, 1628~44) 때의 연호이다. 명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구원한 나라로 청에 멸망하였음에도 지방의 양반 사대부들은 대의와 명분, 절의와 지조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청의 연호보다 이 연호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숭정기원후2경술년(崇禎紀元後二庚戌年)은 1730년(영조 6, 청 옹정 9)이 된다.

 

 

그런데, 석빙고 건성비는 어디에 있을까? 현풍석빙고 주변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 비석은 상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진입 도로 공사가 한창인 논둑에 방치되어 있다. 현풍 석빙고 건성비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예전에는 석빙고 앞 냇가에서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곤 하였다. 지금은 가끔 할머니들이 빨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