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전쟁 이전 시기의 현풍현감(현풍읍선생안) 아침에 감사를 뵙고 하직 인사를 하였다. 감사는 (성주에서) 현풍으로 가고, 나는 풍기로 부모를 뵈러 갔다. (1518년 12월 26일) 정오에 현풍현에 도착하니 현풍현감 박귀령(朴龜齡, 박구령) 공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훈관 성세거가 예를 갖춰 인사하였다. 그 후 유숙하였다. 밤기운에 감기가.. 달성군 2014.09.13
현풍현감 채석견 현풍현감을 역임한 채석견(蔡石堅)이란 인물은 “한국지명총람”과 “경북마을지”에는 세종, “현풍현 읍지”(1895)를 도표화한 “달성군지”에는 세조조로 기록하였다. 1786년 제작된 “현풍현읍지(玄風縣邑誌)”와 1899년의 “현풍군읍지” ‘환적’에는 전평원, 유덕수, 채석견, 3명만.. 달성군 2014.09.13
델 문도 제목이 뭐 이래? 두 편을 읽고 나니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주워 모았다. 붕대를 한 남자, 수리하던 차가 폭발하자 길 건너 연못을 향해 1분간 뛰어가다가 몸 전체 화상을 입어 자동차 수리도 못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어도 화상이 .. 책 2014.09.13
‘황국신민의 서사’는 누가 만들었을까? 조선인이다. ‘황국신민의 서사’는 누가 만들었을까? 조선인이다. “1937년 10월 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 김대우(1900~1976)가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의 서사’(皇國臣民 誓詞)를 만들어 각 학교, 직장, 마을회관에서 아침마다 봉창하게 하였다. 그 서사를 총독 미나미 지로가 직접 .. 달성군 2014.09.13
현풍초등학교 이상한 비석이 하나 현풍초등학교에는 이상한 비석이 하나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 비석은 번듯하게 세워져 잇기도 하였고, 때로는 내팽개쳐지기도 하였다. 2011년 가을 동아리 활동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답사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등학교 운동장에 ‘일왕에 충성 맹세 비석’현풍초등서 발견되.. 달성군 2014.09.13
현풍초등학교의 역사, 보통학교와 소학교 현풍초등학교는 1906년 4월 1일 사립 구양학원으로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현풍군수인 김승표이고, 학교터는 당시의 동헌 터였다. 구양은 당시 현풍천이 구천의 양지바른 곳이란 뜻이다. 현풍학교의 수업 연한은 처음 3년이었다가 1911년 9월 1일 현풍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되면서부.. 달성군 2014.09.13
달성군 충혼탑 이야기4 “현풍초등 백주년사”에 의하면, 현풍초등학교 17회 곽무곤은 1928년 4월 25일 순종 황제의 기일을 맞아 11시경 5, 6학년 남학생 전원이 사직산에 모여 북쪽을 향해 꿇어 앉아 엄숙한 마음으로 참배하였다고 한다. 30분쯤 지나자 일본인 교장과 한국인 이형근 교사가 올라와 데려 가려 하였.. 달성군 2014.09.13
달성군 충혼탑 이야기3 현풍 신사 방화 사건 현풍 사직단은 순종 2년(1908) 일본의 강압에 의해 폐허되었고 그 자리에 신사(神社)를 지었던 것을 1945년 1월 우리 애국지사들이 불태워 버렸다. 이와 관련하여 애국지사 곽종해(郭鍾海, 1891-1946)의 공훈록이 눈에 들어온다. [국립대전현충원 공훈록보기] http://dnc.go.kr/_prog/_board/?code=merit&menu_.. 달성군 2014.09.13
달성군 충혼탑 이야기2 원래 이곳은 사직산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 사직단이 있던 곳이다. 사직단은 임금이나 지방 수령이 백성을 위해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보통 도성이나 동헌(관아)의 서쪽에 위치한다. 사단(社壇)은 동쪽, 직단(稷壇)을 서쪽에 설치한다. 국토(토지).. 달성군 2014.09.13
달성군 충혼탑 이야기1 달성군 충혼탑은 현풍버스정류장 뒤에 옛 사직산에 위치해 있다. 이 탑은 1962년 재향 군인회 달성군 연합분회의 주관으로 당시 달성 군수 김옥현이 추진 위원장이 돼 마련됐다. 이곳은 달성군 출신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1,400여명의 전몰군경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신년 초나, .. 달성군 2014.09.13